군중의 선택, 무죄한 자의 고난
누가복음 23장 1절부터 25절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 심문받으시는 장면과, 무죄하신 그분이 군중의 선택에 의해 십자가 형을 선고받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인간의 불의함과 군중의 선동, 정치적 타협, 그리고 무고한 자의 고난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고난의 길을 걸으십니다. 이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신적 순종과 대속의 사랑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예수님은 공회에서 신성모독의 혐의를 받은 후, 곧바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갑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사안으로는 로마의 사형 권한을 얻기 어려웠기에, 정치적 죄목으로 예수를 고소합니다. 그들은 세 가지 죄목을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이라 하더이다"(2절)
이 고소는 매우 전략적입니다. 첫째는 민중 선동, 둘째는 조세 거부, 셋째는 왕을 참칭한 반역입니다. 이는 모두 로마 제국 아래에서 중대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는 항목입니다. 그러나 이 고소들은 모두 왜곡과 거짓에 근거합니다. 예수님은 세금 납부를 반대한 적이 없고(눅 20:25), 자신을 이 땅의 정치적 왕으로 자처한 적도 없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네 말이 옳도다."(3절) 이 대답은 헬라어로 'σὺ λέγεις(sy legeis)'이며, 직역하면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직접 정치적 왕권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해에 대한 반응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으시지만, 자신이 가진 권위가 이 땅의 왕권이 아님을 묵시적으로 드러내십니다.
빌라도는 곧 예수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음을 선언합니다. "이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4절) 이 선언은 이후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4, 14, 22절). 이는 예수님의 무죄가 분명함을 강조하는 반복적 장치입니다. 그러나 군중은 더욱 거세게 고발하며,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유대를 뒤흔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출신이 갈릴리임을 확인하고, 관할권 문제를 이유로 그를 헤롯 안디바에게 보냅니다.
헤롯의 조롱과 침묵의 권위
헤롯은 예수님을 매우 반가워합니다. 그는 이전부터 예수님을 보고자 했고, 기적 행위를 기대했습니다(8절). 이는 참된 경외가 아니라, 호기심 어린 유희에 가까운 관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9절). 이 침묵은 단순한 무반응이 아니라, 심판적 침묵입니다. 헬라어 'σιγάω(sigaō)'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판단을 유보하거나 거절하는 뉘앙스를 갖습니다.
청교도 존 플라벨은 “하나님은 더 이상 말하지 않으심으로써 가장 무섭게 심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진리를 들을 기회를 얻었지만, 조롱과 모욕으로 응답합니다. 결국 헤롯은 예수님을 멸시하며, 왕의 옷을 입혀 다시 빌라도에게 돌려보냅니다. 누가는 이 과정을 통해 정치 권력자들의 무책임함과 진리에 대한 왜곡된 반응을 고발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12절입니다. "이 날에 헤롯과 빌라도가 서로 친구가 되니 이전에는 원수였더라." 공통의 적을 통해 원수가 친구가 되는 아이러니는 인간 사회의 타협과 외교의 속성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사람들의 정치적 필요와 이익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분은 진리이시지만, 진리는 거짓과 동맹한 권력 앞에서 버려지고 맙니다.
바라고 바라바를 택한 군중
빌라도는 다시금 예수님의 무죄를 주장하며 그를 놓아주려 합니다. 그러나 군중은 일제히 소리칩니다.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주소서"(18절) 바라바는 반란과 살인을 저지른 자였습니다. 그 이름은 히브리어로 '아버지의 아들(bar-abba)'을 의미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된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는 죽임을 당하고, 거짓된 아버지의 아들인 범죄자는 풀려납니다.
빌라도는 세 번째로 예수의 무죄를 선언하며 그를 놓으려 했지만,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칩니다. 헬라어 'ἐπέκειντο(epikeinto)'는 강하게 밀어붙이다, 억지로 요구하다라는 의미로, 군중의 감정이 얼마나 격해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성이나 정의가 아니라, 선동과 증오에 사로잡힌 상태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장면을 해석하며, “진리는 군중의 눈에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종교적 열심과 정치적 전략,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십자가의 길로 떠밀려 가십니다.
빌라도는 마침내 그들의 요구대로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25절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니라." 이 표현은 법적 결정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상은 책임 회피와 타협의 결과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았지만, 자신의 입지와 평화를 위해 의로운 자를 죽이는 길을 선택합니다.
마무리
누가복음 23장 1절부터 25절까지의 본문은 인간의 왜곡된 정의와 권력의 타협, 진리에 대한 무지와 적대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세 차례나 무죄 판결을 받으셨지만, 진실은 외면당하고 대중의 분노에 의해 십자가 형이 선고됩니다.
베드로가 울었고, 헤롯은 웃었으며, 빌라도는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수님 앞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군중은 외쳤고, 바라바는 풀려났고,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순종이며, 무능함이 아니라 구속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 무리 속에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정의보다 편안함을 택하고, 진리보다 타협을 선호하며, 선한 양심 대신 다수의 소리를 따를 때, 우리는 다시금 예수님을 넘겨주는 빌라도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우리를 위해 침묵하셨고,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길은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그 진리 앞에서 서기를 원합니다. 침묵하시는 주님 앞에서, 다시 우리의 입을 열어 고백해야 합니다. "이는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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